영매 시 /하즙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올해도 산청 삼매를 보기 위해 지리산 자락 선비의 고장 산청으로 갔습니다. 진주에서 국도 3호선을 타고 올라가니 저 멀리 하얗게 눈 덮인 천황봉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남사예담촌 원정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897번 길 9)
먼저 지리산 중산리 초입에 자리 잡은 그 유명한 남사마을(남사예담촌)에 있는 원정매부터 보러 갔습니다.
남사마을에 들어서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과 돌담길이 시간을 되돌려 조선시대로 되돌아 간 착각이 듭니다.
남사 마을 안 하 씨 고가 뜰에 심어져 있는 매화나무입니다.
수령은 무려 700년 가까이 되었고, 원나무는 고사하였지만 뿌리에서 후계목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수종은 홍매 겹꽃으로 향이 진합니다. 홍매라 하면 진한 빨강으로 생각했는데 분홍색입니다.
꽃에는 꿀벌들이 많이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꿀벌들도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꽃에 취하고 향기에 이끌여 모두 모여듭니다.
수령 700년 가까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나무 높이 3.7m인 이 원정매는 고려말 문신 원정공 하즙(1303~1380)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호를 따서 원정매라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하 씨 고가 앞뜰에는 원정매가 있고 뒤뜰 담장 쪽 사양정사 앞에는 그 또한 650이 넘은 감나무 1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 감나무는 원정공 하즙의 증손자 문효공 하연이 일곱 살 때 홍시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심었다고 합니다.
감나무 앞에 있는 비석에는 '문효공경재선생수식시목'이라고 적혀 있는데 문효공 경재선생은 하연입니다.
높이 13m, 둘레 1.8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 감나무는 산청곶감의 원종으로 토종 반시감입니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어가는 예쁜 감을 보여주는 이 감나무는 마을의 길흉화복을 함께 했는데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날씨가 춥고 비바람이 치면 도깨비가 나와서 감나무를 보호하였고, 그럴 때마다 집안에는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단속사에 심은 매화 / 강회백
우연히 옛 고향에 찾아 돌아오니
매화 한 그루 맑은 향기 사원에 가득하네.
무심한 나무가 옛 주인을 알아보고
은근히 나를 보고 눈 속에서 반기네.
정당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303-2)
선청군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단속사지 옆에 있습니다.
남사마을에서 오른쪽 1001번 지방도로로 남사천을 따라 5km 정도 가면 왼쪽에 두 석탑이 나옵니다.
정당매는 고려말 문신 윈정공 하즙의 외손자인 통정공 강회백(1357~1402)과 통계공 회중 형제가 어린 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하던 중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후 통정선생께서 벼슬이 정당문학 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부터 정당매로 불러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Tip 정당문학 :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종 2품 관직
1982년 경남도 보호수로 지정된 정당매는 수령이 640여 년인 노거수로 수세가 좋지 않아 2013년 가지 일부를 접목으로 번식하여 2014년 완전히 고사된 정당매 옆에 후계목을 식재해 올해도 예쁜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Tip 단속사는 신라 경덕왕 7년(748년)에 지은 사찰로 이 절을 자주 찾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썼다는 광제암문(절에서 2~3km 떨어진 남쪽 개울가)에서 짚신을 신고, 절을 다 돌고 나오면 미투리가 다 닳아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올 정도의 매우 큰 절이었지만 지금은 당간지주와 쌍탑, 절터만 남아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은 쌍탑 뒤쪽 금당자리와 강당자리를 확보하고 주춧돌을 노출시켜 폐사의 자취를 그대로 남겨만 준다면 지리산 동남쪽 최고의 유적지가 되리라고 장담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우연히 읊다/남명 조식
작은 매화 아래서 책에 붉은 점찍다가
큰 소리로 서경을 읽는데
북두성이 낮아지니 창은 밝아오고
강물 넓은데 물 위에 떠 있는 구름이 아득하구나.
남명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산천재 앞뜰에 있는 매화나무입니다.
정당매를 보고 남사마을까지 나와 20번 국도를 따라 덕산으로 가면 산천재가 나옵니다.
올해 수령 463년을 맞는 남명매는 실천 유학의 대가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61세이던 명종 16년(1561년)에 직접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산천재는 남명선생이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친 곳으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설매 /남명 조식
한 해가 저물어가니 홀로 지내기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까지 내렸구나
선비 집은 오래도록 외롭고 쓸쓸했는데
매화가 피어나니 다시 맑은 기운 솟아나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워 우리를 즐겁게 해 줍니다.
매, 난, 국, 죽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눈 덮인 가지에서 꽃을 피움으로써 선비들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겨 매화를 아꼈습니다.
예로부터 산청은 매화가 많기로 이름난 곳이라고 합니다.
지리산 자락의 산청의 매화는 섬진강의 매화마을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지리산 천왕봉과 선비의 지조를 닮은 품격이 느껴집니다.
'선비의 고장' 산청에서 고매를 감상하면서 그 위엄과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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